2017년 2월 17일 OB 동주문학회 겨울 워크숍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의 의미가 거론되었고 학부 동주문학회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대학생 문화의 현실이 개탄되었다. 이어서 학부 동주문학회 동아리 재건과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인의 의자 제작 방법을 모색하였다. OB 동주문학회원들은 윤동주 시인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고자 시집의 최초 출발 지점부터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2017년 3월 25일 OB 동주문학회원들은 전라남도 광양시의 정병욱 생가를 방문해 그 유족으로부터 시인의 원고가 어떻게 보존되었는지 설명을 들었다.
1944년1월 태평양전쟁에 학병(學兵)으로 끌려가게 된 정병욱은 고향의 어머니에게 들러 만약 자기가 살아 돌아오지 못해도 이 원고를 잘 간직했다가 출판해 줄 것을 당부하며 윤동주의 육필 원고 보관을 부탁하였다. 어머니는 마룻바닥 아래 제사 때 쓰는 제기(祭器)들과 함께 놓은 쌀 항아리 안에 원고를 넣어 지켰다고 한다. 다행히 살아 돌아온 정병욱이 윤동주의 동기 강처중과 함께 유고 31편을 묶어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였다.
OB 동주문학회원 중에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성숙이 동주문학회 재건에 앞장섰다. 학교 안에 근무하기 때문에 윤동주기념사업회의 도움을 구하거나 학부생을 만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과대학 동아리 규정에 따르면 문과대학 소속 3개 학과 이상 10명 이상의 재학생이 있어야 동아리 설립 신고를 할 수 있다. 이에 3월 9일 영문과, 13일 국문과, 20일 사학과, 23일 문헌정보학과 전공 수업에 들어가서 동주문학회의 역사와 동아리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신입회원을 모았다.
영화 <동주>(2016. 2.17)가 상영된 지 오래지 않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강하늘(윤동주 역)의 동주 시 낭송 자료를 화면에 띄우자 학부생들은 숙연한 분위기에서 동아리 소개를 경청하였다. OB 동주문학회원 가운데 저명인사인 소설가 김별아, 영화감독 임찬상이 흔쾌히 후배들을 만나 자리를 빛내 주었고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교수도 기꺼이 강연을 맡아 동아리 선배의 위상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선배들이 자발적으로 재능 기부를 하고 학부생들이 호응해 준 덕분에 동주문학회는 2017년 4월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아리연합회로부터 정식 동아리 승인을 받았다.
영문과 10학번 이노영입니다. 오랜만에 빛을 본 느낌이에요. 어제도 답답한 시국에 밤 늦게 고민에 젖어, 동주 선배가 제 나이인 28에 순국한 것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며 딴에 시구라고 휘갈겨 적었습니다. 동주문학회에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
동아리가 재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OB 동주문학회원들은 모두 뛸 듯이 기뻐하였다. 학부 신입회원과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함께한다는 행사 일정은 알음알음으로 퍼져 나갔고 소식이 끊겼던 국내외 동주문학회원 50여 명이 단체 카톡방에 모여 들었다. 이들은 서로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근황과 안부를 물으며 어제 헤어진 듯 안부를 나누었다. 2017년 5월 9일, 촛불집회로 벚꽃 선거가 치러진 역사적인 날에 동주문학회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 온 선배들의 축복을 받으며 신입회원 16명으로 구성된 학부생 동아리로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캘리그래퍼 이영희 선생이 헌정해 준,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 액자가 전달되었다.
윤동주, 이한열, 노수석…… 더 이상 시대에 살해당하는 학생이 생기지 않아야겠기에
광포한 시대에 주눅 들어 사는 후배들 보기가 참으로 안쓰러워서
동주 이름으로 모였다가 세상으로 나간 선배들이
가진 시간과 재능을 조금씩 나누어 후배들에게 사람 냄새 나는 동아리를 만들어 주려고 나섰습니다.
많은 염려와 기도로 동주문학회 부활을 후원해 준 동주 선배들과 윤동주기념사업회,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동주 후배 여러분은 부디 행복하고 치열하게 대학 생활을 하시고
동주 선후배, 동기들과 기쁘게 나이를 먹으며 천수를 누린 뒤에 혹여
38학번 윤동주와 86학번 이한열, 95학번 노수석 선배에게 인사드릴 날이 오거든
선배들이 목숨을 헐어 밝혀준 시대의 아침을
진리와 자유의 이름으로 떳떳하게 잘 살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이 시공간이 만들어지는 동안 시대의 아픔을 한 줄 시로 남기고 살해된 시인
동주, 화, 석, 지용, 원록, 남주 …
그리고 16학번이 되어보지 못한,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도 모두 잊지 말아야지요.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을 견디며 시대를 따라 순장당해야 했던
그들의 하얀 해골에서 보람과 감격의 눈물이 흐르도록 살아남은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영, 은, 경, 진, 린, 현, 서, 연, 정, 더, 빈, 희, 윤, 정, 하 …
여러분도 우리처럼
동주문학회와의 인연이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회고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동주문학회 선배들을 대표하여 이제껏 선배들 마음의 구심점이었던 동주 정신을
후배들 마음에 옮겨 드립니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동주문학회를 이 시대의 자랑으로 꾸려 가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동아리방이었다. 예전의 동주문학회를 기억하고 있는 문과대학장 사학과 백영서 교수와 문과대학 기획부학장 신경숙 교수 등이 동아리방 마련에 물심양면으로 애를 써 주셨다. 그래서 창립기념식이 예정된 5월 9일 선배들이 모교를 방문하기 전에 서둘러 외솔관 지하에 작은 동아리방을 열어 주었다. 선배들은 작고 낯선 동아리방을 둘러 보면서 후배들이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를 축원해 주고 돌아갔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이미 동아리를 만들고도 방을 얻지 못한 문과대 동아리들이 이의를 제기하였다. 빈 공간이 생겼다면 동아리가 만들어진 순서대로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 후배들의 활동 공간을 지키자고 새치기를 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예전의 동아리방 문을 다시 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서는 학교 측의 승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교양 수업이 이루어지던 종합관에서 교육과학대학 전용 건물로 용도 변경된 건물에서 2011년 이후 쭉 문이 잠겨 있었던 그 공간은 주인이 분명하지 않았다. 동주문학회의 재건을 돕기 위해 교육과학대학원장 정희모 교수가 학교 공간 지적도를 조회해 본 결과, 놀랍게도 그 공간은 문과대학 관할이었다. 지적도에 문과대학 소속 동아리인 '동주문학회'라는 이름이 써 있었기 때문이다.
30여 년 전 문과대학 학생회가 학교를 대상으로 공간 투쟁을 벌여 종합관 6층은 과방으로, 3층 복도의 방들은 동아리방으로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현재 교육과학관으로 개명된 (구)종합관 6층에 멋지게 리모델링된 세미나룸들이 들어서면서 과방들은 3층으로, 동아리방들은 외솔관 지하로 내려갔다. 그러한 학교 공간의 구조 조정 속에 동주문학회 동아리방은 문을 굳게 닫은 채로 (구)종합관 3층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2012년 초 문이 잠긴 지 5년이 넘은 2017년 6월 13일 동주문학회 동아리방은 봉인이 해제되고 문이 열렸다. 2012년까지의 날적이와 시화전 자료, 빈 맥주 캔, 담뱃갑 위에 살포시 거미줄이 쳐진 상태로…… 중요한 자료들만 모아도 라면 박스로 12개였다. 모교 중문과에 재직하는 동주문학회 출신 홍윤희 교수가 동아리방이 재정비될 때까지 자료 박스들을 보관해 주었다.